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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REND

법률과 기술의 결합

법률계의 알파고
‘리걸테크’

# 리걸테크
# 인공지능
# 테크트렌드

지난 8월 말 한국 법조계가 충격에 빠졌다. 인간+인공지능(AI)으로 구성된 팀이
인간 변호사와의 대결에서 압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채점 결과 인간+AI로 구성된 세 팀은 모두 100점을 넘기며 1~3등을 독차지했다.
특히 3등은 변호사 대신 일반인+AI로 구성된 팀이라 충격을 더했다.
법률계의 미래, 리걸테크에 대해 알아보자.


일반인+AI도 변호사 상대 승리 거둬

지난 8월 말 열린 대결은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알파로 경진대회(Alpha Law Competition)’의 일환이다. 대결은 법률 AI(Legal AI)와 변호사·일반인의 혼합팀과 변호사만으로 이뤄진 변호사팀이 제한 시간 내에 근로계약서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라운드(30분)에선 일반적인 근로계약서 2건, 2라운드(20분)에선 복잡하고 까다로운 근로계약서 1건이 문제로 나왔다. 문제는 두 라운드 모두 객관식 1문제와 주관식 단답형 1문제, 주관식 서술형 1문제 등 세 가지 형태로 출제됐다.


채점은 변호사 경력이 풍부한 3명의 심사위원이 맡았다. 채점방식은 변호사 시험처럼 이름이나 신분 등을 노출하지 않고 답안의 수준만 평가하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했다. 1시간에 걸친 채점 끝에 1등 120점, 2등 118점, 3등 107점, 4등 61점, 5등 52점 등 상위 5개의 팀 점수가 공개됐다. 1·2·3등은 혼합팀이었고, 4·5등은 인간 변호사팀이었다. 하지만 둘의 점수 차는 두 배 가까이 났다.


승패의 향방은 문제를 읽고 분석하는 곳에서 갈렸다. 인간 변호사는 문제를 읽는 데만 몇 분이 걸렸고, 이를 분석하는 데 20~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AI는 계약서 내용을 넣고 7초 만에 분석 결과를 내놨다.


분석의 정확도에도 차이가 있었다. AI는 계약서의 문제점, 위험요인, 보안이 필요하거나 누락된 내용 등을 찾아내고 해당 부분에서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지 근로기준법 조항, 시행령, 판례, 노동부 유권해석까지 들어가며 문서로 제시했다. 이용자인 변호사가 알아보기 쉽게 분석한 내용의 중요도를 상·중·하로 나눠 각각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등으로 표시해 주기까지 했다.


단시간 안에 판례를 찾아주는 ‘리걸테크’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영상 출처 – YTN 사이언스)

혼합팀 변호사들은 인공지능이 사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면 모든 내용을 답안지에 인용하고, 의견이 다르면 해당 내용을 참조하는 형태로 답안지를 작성했다. 혼합팀 변호사들은 모두 법률 AI의 높은 활용성에 감탄했다. 1등을 차지한 법무법인 지평 김형우 변호사는 “문제를 풀면서 AI의 빠른 속도와 정확한 분석 능력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각종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을 분석해 현행 최저임금 수준에 못 미친다고 빠르게 도출한 점이 큰 도움이 됐다. 각종 사례 조사 및 분석에 AI의 도움을 받으면 분석 시간이 단축되고 쟁점을 놓치는 오류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AI 경쟁자 아닌 동반자,
미래 변호사 덕목은 AI 활용능력

인간+AI로 구성된 팀이 1~3등을 차지했다는 결과는 충격적이었지만, 행사장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았다. 변호사들이 AI에 밀려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리걸테크 본연의 목적대로 전문가의 지식과 AI의 정확한 분석을 결합한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 심사위원은 “의료 AI인 IBM 왓슨처럼 법률 AI도 변호사들의 직역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들의 오판을 줄이고 업무 시간을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변호사인 1·2등과 일반인인 3등 사이에 점수 차이가 있는 것처럼 AI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결과물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변호사들 역시 동일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 변호사는 “법률 AI는 빠른 분석 시간이 강점이고, 정확도도 상당히 우수하다고 생각된다. 격무에 시달리는 현업 변호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향후에는 AI와 변호사 간 경쟁이 아니라 AI와 같은 리걸테크 기술을 잘 활용하는 변호사와 그렇지 못해 도태되는 변호사 간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법률 AI의 도입으로 일반인들이 법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문제를 찾아내는 ‘예방법학(Preventive Law)’의 혜택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법조계는 사건이 일어난 후 피해를 복구하는 사후 법률 처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률 AI가 활성화되면, 일반인들이 상대적으로 변호사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법률 AI의 도움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의료계의 경우 의료 AI를 활용한 개인 건강 맞춤형 예방의학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리걸테크 활성화 위한
법률 데이터 개방 필요

현재 리걸테크는 법조삼륜 가운데 민간 영역인 변호사를 중심으로 도입이 활발하다. 김앤장과 율촌 등 국내 주요 로펌들 역시 전담 부서를 세우고 리걸테크 도입을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김앤장의 경우 대표적인 리걸테크 기법인 ‘이디스커버리(전자증거개시)’를 활용해 영국 법원에서 진행된 1000억 원대 소송에서 승소를 끌어내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판사, 검사의 공적 영역에도 법률 AI가 도입되고 있다. 중국 하이난 지방법원 형사법정에는 벌써 AI를 활용한 양형 기준이 도입됐고, 충칭 서남대학교 법학대학에는 법률 AI 개발을 위한 AI법학원이 개설됐다.


AI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국내 법조계의 빠른 AI 도입을 주문했다. 이번 대결만 해도 2017년 영국에서 진행된 AI 대 변호사의 대결을 한국 상황에 맞게 재현한 것이라고 평했다. 당시 영국 변호사 112명은 케임브리지 법대생 4명이 만든 법률 AI ‘케이스 크런처 알파’와 보험문서 분석 대결을 펼쳐 완패했다. 실제 소송까지 간 사례를 찾는 대결에서 AI는 86.6%, 변호사는 66.3%의 정확도를 보여줬다. 이렇듯 법률문서를 검토하는 분야에선 법률 AI가 변호사보다 높은 효율성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 리걸테크 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리걸테크 기법인 전자증거개시의 경우 미국에선 2006년 민사소송 영역에 도입됐지만, 국내에선 형사소송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법률 AI의 경우 AI 개발을 위한 양질의 데이터를 보유한 국내 법원이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베이스화 미비 등으로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리걸테크 도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기업이 법조인들과 협력해 리걸테크 개발에 나섰다. 법무법인 한결·SK C&C·다방은 부동산권리분석을 위한 법률 AI ‘로빈’을 개발 중이고, 리걸테크 전문 로펌인 인텔리콘은 법률·판례 분석 및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 AI ‘유렉스’를 상용화했다. 헬프미는 지급명령 간소화 서비스인 ‘지급명령 헬프미’를, 리걸인사이트와 티쓰리큐는 ‘지능형 계약서 자동작성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정부도 리걸테크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법무부는 생활법률지식을 제공하는 ‘버비’를, 대법원은 AI 재판연구관인 ‘지능형 개인회생·파산 시스템’을 선보였다.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 변호사는 “현재 법률 AI는 양형 판단, 재발 위험성 예측, 법률문서 검토 등 재판 과정의 도우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법률 AI가 판결을 대신하는 AI 판사는 시기상조”라며 “하지만 고도의 자연어 처리·딥러닝(인공신경망) 기술과 10억 건 정도에 달하는 양질의 판례 데이터만 있으면 AI 판사의 탄생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향후 법률 AI 시장을 전망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법률 데이터를 대법원에서 극소수에게만 공개하고 있기에 법률 AI 개발에 따른 어려움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더 발전된 법률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리걸테크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4차산업시대에 리걸테크를 안전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할 순간이다.


글. 아주경제 강일용 기자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로 바꾸는 기업의 미래> 공동 저자이자 소프트웨어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일반인 대상 교육을 진행해 소프트웨어에 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