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PA INSIDE
INTERVIEW
TECH
PRODUCT
STORY
EVENT
KIPA INSIDE
INTERVIEW
TECH
PRODUCT
STORY
EVENT
닫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STORY

한글타자기의 시작은?

한글 사랑이
탄생시킨 타자기

#아이디어의힘
#발명훈련
#광고인

손으로 직접 쓴 편지와 전화통화만이 의사소통 수단의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전국을 넘어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됐습니다.
특히, 눈감고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만큼 타자양식이 잘 발달 된
한글 타자기는 우리나라의 자랑이 되고 있죠.
과연 한글 타자기의 시작에는 누가 자리하고 있을까요?

자음과 모음 24자가 모두 위치한 한글 자판기는
약 5만 자가 넘는 한자로 인해
대부분 음성으로 의사소통하는 중국과
일일이 한자를 대조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일본의 타자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의사소통 전달 능력을 갖고 있는
한글 타자기는 1950년 안과의사인 공병우 박사가
세벌식 타자기를 고안해 한국과 미국 정부의 특허를 얻으며,
미국 언더우드사에 제작을 맡겨 상품화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공병우 박사는 단순히 개발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1980년대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한글 타자기의 편리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국내 프로그래머들과 교류하며
한글의 과학화에 힘썼습니다.
프로그래머도, 그렇다고 언어학자도 아닌
그가 한글 타자기를 발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 박사는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공부한 탓에
한글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글학자 이극로와 만나게 되면서
한글의 매력에 빠져
늦은 나이에 한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거죠.

당신 공병우 박사의 마음을 흔든 이극로 선생의 말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훌륭한 한글을
일본인들이 못 쓰도록 탄압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도 제 나라 글에 관심이 없고
무시하기까지 한다.”였습니다.
이 말에 공병우 박사는
한글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한글로 된 시력 검사표를 만들었고,
안질환과 관련된 정보를 한글로 작성해
환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기존의 한글 타자기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직접 타자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편리함’에 초점을 둔 결과,
1948년 한국 최초로 세벌식 한글 타자기 제작을 성공시켰죠.
그의 노력 끝에 탄생한 세벌식 타자기는
매우 간편하고 유용해 문서를 작성하는데 사용됐습니다.
공병우 박사는 세벌식 타자기 제작 이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타자기를 꾸준히 개량해
지금의 한글 타자기를 완성 시켰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 발명에 몰두한 공병우 박사.

그가 있기에 우리는 목소리 없이
글자만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만의 불편함이 아닌 모두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노력한 그의 모습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위한 발명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