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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IP

첨단기술을 농업에 접목시키다

같은 듯 다른 길,
애그테크와 스마트농업

# 애그테크
# 4차산업혁명
# 농업기술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중요성이 오래전부터 강조되고 있다.
과연 이 첨단기술은 단순히 업무를 진행할 때만 필요할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니다.
최근 농업에도 4차 산업혁명의 영향력이 퍼지고 있다. ‘애그테크’와 ‘스마트농업’이 그런 경우다.


미래 식량부족의 해결책, 애그테크

사냥을 버리고 한 곳에 정착해 농경을 하기로 결정한 인류의 가장 큰 고민은 곡물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농기구들이 발명되었고, 나중에는 동력 기기들을 농사에 이용하게 되었으며, 천수답을 벗어나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고 수리시설과 관개시설을 고안하게 되었다.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기술의 발명과 혁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근래의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의 성과를 농업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일컫는 말이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의 앞글자를 딴 ‘애그테크(AgTech)’다.


애그테크는 토양의 온도와 습도, 일조량 등을 농작물 재배에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비롯해 우수한 품질의 생산물을 수확하는 시기를 예측하는 것 등 파종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머신러닝, 드론, 로봇 등 첨단기술을 농업 생산에 적용하려는 시도이다.


애그테크가 주목받는 이유는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기대되기 때문인데, 이런 기대의 배경에는 장차 지구에 식량부족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자리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오는 2050년, 세계 인구가 90억 명으로 급증할 것이며, 이에 따라 심각한 식량부족 현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나타났다.


FAO가 지금보다 곡물을 70% 정도 더 생산해야 한다고 절박한 분석을 내놓았으나, 현실은 오히려 점점 더 농사짓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기후변화와 도시화로 경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농민들은 고령화되는 가운데 농업 이민자의 수도 감소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맑은 공기와 적절한 온도, 강수량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대안은 이전과는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사람이 아닌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기후변화와 상관없이 인공적인 일조량과 수분의 조절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애그테크는 바로 이런 시도를 위한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애그테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것들을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2013년 설립된 미국 ‘수직농장’ 스타트업 ‘플렌티(Plenty)’는 최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수직농장(Vertical Farming)이란 인공 구조물 안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고도로 자동화된 아파트형 식물공장을 말하며, 사물인터넷 기술을 이용해 농작물을 재배한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수중농장도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탈리아에 있는 ‘네모의 정원(Nemo’s garden)’에서는 수심 8m의 해저에 만든 5개의 투명 돔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투명 돔은 빛 투과율이 높고, 일정 온도 유지가 가능한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식량을 재배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경작할 방법을 찾아보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낡은 농업 유통의 혁신, 스마트농업

경지 부족, 농부 부족,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부족 전망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응당 대비가 필요하지만, 아직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식량부족 문제를 겪고 있지만, 남아도는 쌀이 문제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웬만한 선진국에서 농업과 관련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생산보다는 유통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한해 양파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폭등하면, 이듬해에는 너나없이 양파를 키우는 바람에 생산량이 급증해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농부들이 100원에 판매하는 배추가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소비자들이 구매할 때는 2,000원이 되는 것도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은 생산량의 부족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스마트농업(Smart Agriculture)’은 우리나라에서는 애그테크와 별반 다르지 않게 ICT를 이용한 농업이나 원격제어 농업 정도로 이해되고 있으나, 글로벌 농업에서는 생산보다는 유통 체계를 혁신하는데 보다 중점을 두려는 시도들을 지칭한다.


스마트 공장, 스마트 워킹 등의 단어에서 보듯 ‘스마트’라는 접두어에는, 필요한 때에 신속히 공급하고 수요와 공급을 적절하게 조절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에 대입하면 스마트농업은 농산물을 수요에 맞춰 생산하고 제때에 소비자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들을 일컫는다.



애그테크가 생산량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 기술 중심적이라면, 스마트농업은 유통의 관행을 혁신하려는데 주안점이 있어 아이디어와 컨셉이 강조된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에 기반을 둔 직거래 관계를 형성하여 농부에게는 더 많은 수익을, 소비자에게는 더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려는 스마트농업은 이미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특허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스마트농업과 관련된 특허 건수는 2008년 1건에 불과했지만 2014년 60건, 2016년 85건, 2017년 61건으로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출원 기술을 자세히 살펴보면 온실과 식물공장, 수경재배 시스템 등 온실 스마트팜에 필요한 시설 관련 기술이 출원됐고 작물 생장 모니터링 기술로는 작물의 생육 상태 센싱과 병충해 진단 등 지능형 모니터링 기술 등이다.


최근에는 1차산업인 농업을 3차산업인 서비스업, 나아가 금융투자업으로 전환시켜 유통을 혁신하려는 흥미로운 스마트농업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국내의 농업 벤처기업 만나씨이에이는 아쿠아포닉스 기술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스마트팜 사업을 위해 소액 투자기법인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으로 자금을 모았다.


아쿠아포닉스는 물고기를 키우는 수조의 물로 농작물을 키우는 기술이다. 원리는 이렇다. 수조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물고기를 키우면 물고기 배설물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NH3)가 물과 만나 암모늄이온(NH4+)이 된다. 이 성분은 물고기를 죽이는 독소로 작용하지만, 수조에 미생물을 넣어 암모늄이온을 분해하면 농작물의 영양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수조에 뿌리가 잠겨있는 농작물이 이 성분을 흡수하면 물은 깨끗해지고 별도의 비료도 필요 없게 된다.


만나씨이에이는 아쿠아포닉스 농법의 스마트팜을 설치하기 위해, 대략 수조 하나 단위로 개인들에게 투자를 받았다. 투자한 개인들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도 작은 스마트팜의 소유주가 되며, 이 수조에서 자란 농작물을 받게 된다. 개인의 섭취량을 넘어서는 잉여 농작물이 있다면 만나씨이에이가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에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배당해준다.


금융기법을 활용한 이런 방식의 농업은 직거래를 넘어 소비자가 직접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용자는 마치 주말농장처럼 자신이 원하는 작물의 생산을 주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농작물을 자신이 섭취하는 이런 농업에서는 농산물 가격 변동 등의 문제는 애당초 끼어들 여지가 없게 된다.



애그테크에서 스마트농업으로

애그테크의 비전은 확실히 놀라운 것이지만 한편으로 우울함과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건 아마도 애그테크가 기본적으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환경이 오염되고, 기후변화로 생태계는 교란되고, 게다가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은 없는데 식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급증하는 지구…. 이런 암울한 미래를 구할 막중한 짐이 애그테크에 지워져 있는 것이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애그테크가 더욱 각광받고 애그테크 기업의 주가가 폭등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그건 아마도 인류에게 그닥 좋은 소식은 아닐 것이다.


애그테크는 사람이 없는 농업을 가정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사람 냄새가 잘 나지 않는다. 반면 스마트농업은 미래가 아닌 현재 농업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좀 더 초점을 두고 있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거나 그동안 작물 생산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농업과 가깝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스마트농업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애그테크와 스마트농업이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애그테크의 관점에서 본 아쿠아포닉스는 토양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기는 하나 설비 투자를 위해 상당한 자본을 투입해야 기술이다. 그러나 스마트농업의 관점을 가미하면 대규모 자본투입 없이도 이용자를 농부로 만들고, 농업 유통을 혁신할 수 있는 스마트팜 구현 기술로 바꿀 수 있다. 애그테크와 스마트농업의 차이는 아쿠아포닉스에서 물고기를 보느냐 사람을 떠올리느냐의 차이일 수도 있다.


애그테크가 미래의 농업, 수십 년 후의 지구를 살아갈 인류의 농업이라면, 지금처럼 최첨단 기술만 잔뜩 나열하기보다는 스마트농업과 접목되어 보다 사람 냄새를 가미하면 좋을 것 같다.


글. 박종훈 (ICT 컬럼니스트)
IT 부문 국내 최장수 잡지인 <주간기술동향>의 ‘최신ICT이슈’ 코너를 12년간 연재했다. 현재 글로벌 의료사업 기업에 근무하고 있으며, ICT 부문 객원 컨설턴트 겸 컬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