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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 IP트렌드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든테크

글. 이요훈(IT 칼럼니스트)

코로나19가 한 회사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다. 바로 소형 냉장고 크기의 실내 식물재배기 그로팟(GroPod)을 개발한
미국 스타트업 회사 헬리포닉스다. 헬리포닉스는 미국 퍼듀대 학생들이 NASA가 지원하는 수경 재배 시설 연구를
진행하다 창업한 회사다. 한때 수직농업(垂直農業, vertical farmming) 시장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실적이 좋지는 않아 2018년 수십 대를 판매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 회사가 코로나19로 인해 전환기를 맞아
실내 식물재배기에 대한 해외 각지에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 가든테크
# 코로나19
# 식물재배기
    ▲ 사진 : 실내 식물재배기 ‘그로팟’ (출처: 헬리포닉스)

식물을 키우는 기술, 가든테크
식물재배를 다루는 영역은 주로 애그리테크(농업 테크)와 푸드 테크, 그린 테크다. 애그리테크에선 농업으로서 식물재배를 다루고, 푸드테크에선 좋은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린테크는 도시 생활 기반으로 식물을 어떻게 설치, 키우는 게 좋은지 연구한다. 여기서 식물재배에 관여하는 기술을 따로 스마트 가드닝 테크놀로지(Smart Gardening Technology), 줄여서 가든테크라고 부른다. 식물 공장 또는 스마트팜이라 불리는 도시형 식물 농업을 가능하게 만든 기술이기도 하다.

식물 공장은 수경 재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 바빌론의 공중 정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알려진, 흙 없이 식물을 키우는 기술이다. 식물이 성장하기 위해 광합성 할 때, 굳이 흙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이용했다. 수경 재배는 오래된 기술이지만 지지부진했다가, 20세기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윌리엄 F. 게릭이 수경 재배로 토마토를 키우는 데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더 컸기에, 1960년대부터 수경재배는 미국, 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많이 활용되기 시작한다.
가든테크의 확산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육 환경을 제어할 수 있게 되자, 1990년대부터 식물 공장이라는 개념이 퍼지기 시작했다. 유럽은 태양광을 이용한 대형 유리 온실 중심이었지만, 일본은 완전히 실내에서 자동으로 식물을 키우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LED 광원 등 대체 광원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미국은 NASA를 중심으로 우주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농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다. 이런 고민은 소량의 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에어로포닉스(분무식 재배) 기술을 탄생시켰다. 여기에 1999년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딕슨 데스포미어 교수가 식물을 층층이 쌓아 재배하는, 수직 농장 개념을 대중화시키면서 현재 가든테크를 이루는 기술이 모두 모이게 된다.

기술이 모였지만 당장 쓰인 것은 아니다. 20세기 말부터 기후 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으로, 세계 곳곳에서 식량 위기를 겪었다. 당시 아사 위기에 처한 사람이 방글라데시에서만 2천만 명이었다. 세계은행은 21세기에 물 전쟁이 닥칠 거라 예고했다. 지구 인구도 급속히 불어나고 있었다. 글로벌 농업 위기가 닥치자 새로운 농업 방법인 가든테크가 필요해졌다. ‘클리어뷰IP’가 분석한 내용을 보면 1999년부터 2006년까진 연간 50건 미만었던 수직 농업 특허가 2007년부터 크게 늘기 시작해 2016년에는 900여 건의 국제 특허가 출원됐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다음으로 많으며, 특히 농촌진흥청에서 많은 특허를 취득했다. 가정용 식물재배솔루션에 대한 특허 출원도 2010년부터 늘어 2017년에는 200건을 초과했다.
가든테크, 가정으로 들어가다.
2016년에는 세계 최대의 수직 농장형 식물 공장 에어로팜이 등장한다. 식물 재배에 필요한 빛, 공기, 온도, 습도, 양분 등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많은 투자가 이뤄졌고 우후죽순처럼 새로운 기업이 생겨났지만, 성과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초기 시설 비용이 많이 들고 LED 조명 등에 들어가는 유지비가 상당하며, 완전 자동화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짧게 말해 아직 가격 경쟁력이 없었다. 그러자 새로운 도전자들은 돈이 많이 드는 식물 공장보다, 실내 가드닝 및 식물재배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동 두바이같이 환경적으로 농업이 힘들거나 합법적으로 대마초를 키우는 등, 가든테크가 있어야 하는 새로운 시장도 발견됐다.

    ▲ 사진 : 로토팜 (출처 : Base)

지금 반응이 가장 뜨거운 제품은 호주 스타트업 베이스(Base)가 만든 로토팜이다. 천천히 돌아가며 식물을 키우는 장치다. 가운데에서 LED 광원을 비추고 식물은 주변에 배치된다. 원형이기 때문에 50cm 넓이 공간만 있어도, 3배 이상 식물을 심을 수 있다. 현재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해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작은 식물 공장과 마찬가지인 식물재배기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LG에서 선보인 프리미엄 식물재배기는 대형 냉장고 형태다. 4단으로 나뉜 선반에 씨앗이 담긴 선반을 넣고 문을 닫으면, 자동으로 재배를 시작한다. 대략 20여 종의 채소를 키울 수 있으며, 새싹 채소는 2주, 잎채소는 4주면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새싹 채소를 기르면 1년에 24모작을 할 수 있는 셈이다.

    ▲ 사진 : LG 프리미엄 식물재배기 (출처 : LG전자)

미래의 가든테크, 어떤 모습일까?
코로나19는 가든테크 기업이 처한 상황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격리 생활로 인해 정원을 가꾸고 식물재배하는 사람이 늘었다.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 한 수경원예회사의 창업자는, “미친 듯이 주문이 늘어났다”고 말할 정도다. 그로팟 및 에어로가든 같은 실내 재배기 주문도 폭증했다. 플랜트링크 같은 흙의 수분을 확인할 수 있는 센서나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는 스마트 스프링클러, 날씨를 파악하는 스마트 웨더 스테이션, 자동제어 조명, 잔디 깎기 로봇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가격이 저렴해진 센서 가격에 기반을 둔 스마트 가드닝 제품들은 이미 시장에 자리 잡았다.

가든테크,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농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사업은 아직 실증 실험 단계다. 수확한 채소의 가격이 비싸서 고소득 소비자에게만 팔린다. LED 광원 유지비가 저렴해졌다고 하지만, 유통망을 비롯해 제대로 된 사업 모델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AI를 이용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생산 공정을 혁신하고 가격도 낮춰야 한다. 다행히 가든테크 신생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특허는 대부분 수직 농장을 운영하는 하드웨어와 환경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특허다. 이들 특허는 실내 재배기에 먼저 적용되고, 시장이 확대되면 식물 공장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 사진 : 아마존, 네트워크 기반 스마트 가든 서비스 특허 (출처 : INHABITAT 사이트)

지난 2017년, 아마존은 네트워크 기반 스마트 가든 서비스에 대한 특허를 받은 적이 있다. 자기 집 정원 사진을 찍으면, 인공지능을 이용해 어떤 식물이 있는지 분석하고, 그 식물로 어떤 음식을 하면 좋은지 조리법을 추천하는 서비스다. 부족한 재료는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알려줘 사게 한다. 나중엔 정원의 어느 위치에 어떤 식물을 심으면 좋은지도 말해준다고 한다.

황당하게 보이지만, 현재 소비자를 위한 기술의 모든 방향은 서비스로 맞춰져 있다. 이런 서비스가 식물재배기와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 기기를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식을 만들지 미리 결정하고 식물을 재배기에서 키운다. 다른 재료는 식물이 자라는 상황에 맞춰 배송되어 온다. 충분히 가능한 상상 아닐까? 지금 식물재배기를 파는 회사도, 주요 수입원은 씨앗 판매에서 온다. 기술의 미래에 필요한 건,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될 기능이다. 가든테크는 지금, 그걸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