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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 IP트렌드

푸드테크 로봇,
비대면 시대의 생존 기술

글. 이요훈(IT 칼럼니스트)

2020년 6월, 패스트푸드 체인점 KFC 모스크바점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비대면 점포 운영 테스트다.
손님이 무인 키오스크를 통해 음식을 주문하면, 주방에서 조리해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고, 로봇팔이
정해진 픽업 데스크에 내려놓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과 사람이 접촉할 일이 없는, 비대면·비접촉 매장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렇게, 푸드테크 로봇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 푸드테크로봇
# 코로나19

시작은 불안했던 푸드테크 로봇
첨단기술과 식품 산업이 만나 태어난 푸드테크에서는 사실 예전부터 여러 로봇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런 로봇을 푸드테크 로봇, 또는 그냥 푸드로봇이라 칭한다. 쓰이는 분야는 원재료 생산에서부터 배송, 음식 제조, 서빙 및 배달까지 다양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역시 외식업이다. 최근 몇 년간 임대료, 인건비 등 여러 가지 원가 상승 요인이 많아지자, 사람들은 자동화 기술로 눈을 돌렸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조리부터 서빙, 매장 관리, 배달까지 가게 하나를 로봇으로 꽉 채워도 될 정도로 많은 로봇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푸드테크 로봇은 성공하지는 못했다. 비싼 가격에 비해 기술이 부족하고, 관리 문제를 노출했기 때문이다. 투자 유치를 위해 만들어진 기술 과시용 제품이 많았던 것도 문제다. 아직 푸드테크 로봇은 실용적이기보다는, 홍보를 위해 도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소프트뱅크에서 약 4300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던 피자 제조 로봇 기업 줌피자(Zume Pizza)는, 2020년 1월 로봇 피자 사업을 포기하며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로봇팔이 춤추며 커피를 만들던 카페X는 다섯 개의 매장 가운데 세 개를 포기했다. 비대면 레스토랑으로 유명했던 잇사(Eatsa)는 2019년 여름 일찌감치 사업을 접었다.

그나마 성공한 푸드테크는 간편 결제나 무인 키오스크, 배달 앱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당장 가게에서 쓸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이었다.
    ▲ 사진 : 줌피자(Zume Pizza)의 피자 로봇. (출처 : 줌피자)

코로나19,
푸드테크 로봇을 되살리다
푸드테크 로봇이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환멸의 골짜기에 빠져들 무렵, 코로나19가 터졌다.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했고, 원격 근무와 재택 학습이 강제되었다. 가게에서 손님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비대면으로 음식을 팔 수 있는 매장과 그렇지 않은 매장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렸다. 2020년 상반기 미국에서는 530여 개의 외식 업체가 문을 닫았지만,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를 제공하는 퀵 서비스 레스토랑은 큰 타격이 없었다. 타코벨 같은 브랜드는 오히려 점포가 늘어났다.

다시 말해, 이제 외식 업계는 비대면·비접촉 서비스를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푸드테크 로봇은 이런 상황에서 다시 불려오게 된다. 쓰이는 분야는 크게 조리, 서빙, 배달이다. 예를 들어 올해 하반기부터 미 화이트캐슬 버거 체인점에 도입될 플리피는 로봇 주방 도우미다. 햄버거 패티를 굽거나 프렌치프라이를 튀길 수 있다. 스무디 제조 로봇 키오스크인 블렌디드도 주문량이 늘었다. 이 로봇을 이용하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레시피로 만든 스무디를 주문할 수 있다. 자동으로 샐러드를 만드는 로봇 자판기 샐리는, 코로나19 이후 주문량이 60% 늘었다. 이 로봇을 이용하면 버튼 한 번에, 원하는 재료로 만든 다양한 샐러드를 맛볼 수 있다.

    ▲ 사진 : 샐러드 로봇 자판기 샐리(Sally). (출처 : www.chowbotics.com)

안녕하세요,
로봇이 배달왔어요
조리 로봇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관절을 가지고 인간의 행동을 모방해 조리하는 로봇과 식품 공장을 축소한 형태의 로봇이다. 초기에는 요리사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는 형태의 로봇도 선보였지만, 실용성이 떨어져 실제로 쓰이지는 않는다. 영화에 나오는 로봇과는 다르게 기계에 가깝게 보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라 제품 하나를 개발하면서 꽤 많은 특허를 얻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로봇 햄버거 레스토랑 크리에이터에서 만든 햄버거 로봇은, 스무 개가 넘는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서빙과 배달 로봇은 조리 로봇과는 다르다. 자율 주행하는 전동 카트에 가깝다. 예를 들어 베어 로보틱스에서 만든 페니는 라이다와 3D 카메라를 이용해 공간을 파악하고, 하단에 달린 바퀴를 이용해 스스로 움직인다. 한 번에 22kg까지 나를 수 있으면, 한번 충전에 200회 이상 서빙이 가능한 로봇이다. 선주문 받은 물량만 1만여 대에 달한다고 한다. 다만 아직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다.

에스토니아 기업 스타십 테크놀로지에서 만든 배달 로봇, 키위봇(kiwibot)도 있다. 전용 앱을 통해 음식이나 상품을 주문하면, 집이나 사무실 등 지정된 장소로 배달해주는 로봇이다. 사람처럼 인도를 주행하다가 사람이 오면 피하고, 건널목에서는 빨강 신호등에서 기다렸다가 지나간다. 약 4~5km 정도 되는 거리까지 배달할 수 있고, 지금까지 배달 횟수는 10만 회에 달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위생용품을 전달하는 로봇으로도 활약했다.

    ▲ 사진 : 배달 로봇, 키위봇(kiwibot). (출처 : www.kiwibot.com)

이 밖에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도 실내 자율 주행 서빙 로봇 달리 플레이트, 실외 자율 주행 배달 로봇 달리 드라이브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 다만 서빙 로봇과 배달 로봇은 완전히 상용화가 됐다고 말하긴 어렵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고, 지금은 검증을 거치는 단계라고 보는 것이 좋다.


다양한 푸드테크 로봇이 만들 미래의 레스토랑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푸드테크 로봇은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고 있다. 앞서 말했듯 유명 푸드테크 로봇 스타트업은 상당수 망했다. 살아남은 회사도 상황이 좋지는 않다. 성공 사례로 불리던 햄버거 로봇 레스토랑 크리에이터스는 지금 매장을 임시로 닫았다. 또 다른 성공 사례였던 스파이스 역시 작년 11월부터 일시적으로 레스토랑을 폐쇄한 상태다. 단순히 인건비 절약 같은 관점으로 보면, 외식 산업에서 로봇이 살아남기는 어렵다.

성공한 기술은 가치를 제공한다. 무인 키오스크는 직원이 하던 일을 고객에게 떠넘겨서 인건비를 절약했고, 손님은 그 대신 기다리는 시간을 줄였다. 배달 앱은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던 다양한 가게와 고객을 연결했다. 이제까지 푸드테크 로봇은 이런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 로봇 요리사가 만드는 음식이 더 맛있지도 않았고, 서빙 로봇이 서빙할 때면 오히려 고객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 배달 로봇은 좋아 보이지만 아직 쓰임새가 제한적이다. 로봇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다. 로봇은 생각 이상으로 손이 많이 간다.

그런데도, 푸드테크 로봇에 대한 투자는 줄지 않고 있다. 푸드테크 로봇이 제공하는 자동화와 거기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비접촉 상황은, 많은 레스토랑이 가져야 할 필수 서비스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점칠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지금 세계는, 안전이란 관점에서 완전히 재구성되고 있고, 푸드테크 로봇은 그런 재구성에 한몫할 가능성이 있다. 100% 사람을 대체하기보다는, 사람을 더 안전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쪽에 가깝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