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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SUCCESS

진정한 친환경은
환경을 없애는 것입니다
대소변으로 에너지를 만들다

글. 정찬영 사진. 김오늘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낄 때 흔히들 자신을 “똥만 싸는 기계”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대소변만 누어도 그것이 에너지와 돈으로 바뀌는 집이 있다면 말은 달라진다.
대소변이 화폐로 바뀌어 밖에서 식생활을 해결하고 심지어 미용실까지 이용이 가능한 나라 사이언스 월든. 이 환상의 나라는 어디서 어떻게 출발한 것일까. 마법 같은 집을 탄생시킨 유니스트 조재원 교수를 만나 그가 꿈꾸는 세상을 직접 체험해보았다.


#사이언스월든
#친환경에너지
#똥본위화폐

무심코 흘려버린 대소변, 그것이 에너지와 돈이 된다면?
대소변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심지어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아마 지금처럼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품어본다. 하지만 하루 동안 먹은 수많은 음식물을 모두 소화하고 난 뒤 무심코 흘려보낸 ‘그것’들에게 에너지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재활용은커녕 깨끗하게 처리라도 제대로 되면 감사한 아이들이 아닌가.
하지만 조재원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각자의 에너지를 타고났기에 대소변이라고 그렇게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고 보았다. 더군다나 실제로 살아있는 미생물이 먹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기에 처리 방법을 조금 바꾸면 충분히 에너지로 재생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대소변을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는 ‘비비 화장실’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공학자로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친환경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러다가 지리산에 있는 제 개인 집에 생태 화장실(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거주를 하다가 대소변에 대한 관심을 두기 시작했죠. 버려지는 대소변을 연구와 기술을 통해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높일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만든 것이 지금의 시스템이에요.”


비비화장실에서 모인 대소변은 모두 지하 탱크에 저장된다. 이후 혐기소화조로 이동된 후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분해되어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로 구성된 바이오가스로 변신하면 끝! 바이오가스는 정제 후 가스레인지 또는 보일러의 연료로 사용된다. 이후 에너지로 전환되지 않은 잔여물은 식물의 비료나 미세조류의 먹이로 활용되며 재순환을 마친다.


과학이 일상이 되는 집, ‘과일집’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유니스트에 가면 수많은 건물 중 ‘과일집’이라는 특이한 건물명이 눈에 띈다. 웬 과일가게가 대학교 안에 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이름이다. 하지만 과일집은 과일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과학이 일상이 되는 집’의 줄임말이다.
과일집은 비비 화장실에서 만들어진 에너지로 집이 굴러간다. 과일집은 실제 집과 동일하게 거실과 침실, 화장실, 부엌이 모두 갖춰져 있어 실제로 호텔처럼 하루를 묵어가는 손님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공간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30%는 비비화장실에서 마련된다.

“기술을 완성시키면 연구는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것을 우리가 실제로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기술이 생활과 만나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는지 두 눈으로 체험한다면, 그때부터 세상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비비화장실에 마련된 변기는 특수 제작된 ‘비비변기’다. 디자인 등록이 되어있는 이 변기는 대변과 소변을 분리시켜 흡수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수세식 변기는 과하게 물을 사용해 미생물이 먹을 수가 없는 상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비비변기에서는 변기 내 구조의 각도를 세밀하게 조절하여 대변과 소변을 분리하고, 비행기 화장실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진공으로 흡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마련된 대소변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를 이용해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 음식을 하고, 보일러로 방을 데운다. 심지어 소변을 정화시켜 수돗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찝찝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소변 정화 수돗물’과 ‘일반 수돗물’ 중 선택이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오염도 측정 결과에 따르면 소변을 정화시킨 수돗물이 일반 수돗물보다 더 깨끗할 때가 많다고 한다.

“대소변이 주는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 집 내에 선택지를 제공했습니다. 억지로 친환경 기술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또한 본인이 선택을 하면 자신이 쓰는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얼만큼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두 눈으로 보고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과학과 예술의 만남, 사이언스월든과 똥본위화폐
환경공학자가 모두 친환경을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연과 친화된 삶을 원했고,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자연에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또한 친환경을 추구한다고 하면 ‘잔소리하는 사람’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역시 피하고 싶었다는 조재원 교수. 그가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말라’는 부정의 언어가 아닌, 생활 자체가 친환경이 되는 긍정의 언어였다.
그렇게 사이언스월든이 시작됐다. 자신이 가진 과학 기술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이용할 수 있으려면 인문학자와 예술가가 필요하다고 느낀 조재원 교수는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가 모인 과학 커뮤니티 사이언스월든을 만들게 된다.

“사이언스월든에 모인 연구자가 60여 명이고, 이 중 절반이 공학자 과학자, 절반이 인문학자 예술가에요. 처음에 연구를 시작할 때 다 같이 모여서 이런 고민을 했어요. 과학예술융합연구가 과연 무엇일까. 그러다가 과학자가 만든 것을 인문학자나 예술가가 표현하거나, 인문학자나 예술가가 고안한 걸 과학자가 실현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다 같이 모여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보자 이렇게 약속을 한 거죠. 그렇게 과학 예술이라는 장르를 만들었고, 과일집에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만들어 낸 것이 ‘똥본위화폐’입니다.”


똥본위화폐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제기호로, 돈이 아닌 ‘꿀’을 이용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화폐단위다. 대소변을 에너지로 만드는 만큼의 양을 꿀 단위로 받아 적립하고 이것을 실제 가게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똥본위화폐 홈페이지에 가면 꿀을 이용해 살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 유니스트 내에 꿀을 이용해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무인상점이 운영 중이다.
(*똥본위화폐 홈페이지: https://fsm.network/)


진정한 친환경은 환경을 없애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과학은 기술적인 가능성을 넘어, 삶의 가능성까지 증명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기술적으로 무한하게 발전하는 것 이전에, 그 기술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는 조재원 교수.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친환경이라는 가치가 사람들에게 ‘불편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 역시 불편하다고 이야기한다.

“친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거죠. 그리고 장애인분들 같은 경우도 플라스틱 사용이 필수적이거든요. 가장 좋은 친환경은 그냥 친환경적인 삶 자체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불편하게 뭔가를 하지 않아도, 내 삶 자체가 환경의 주체가 되는 거죠.”


그는 사람 자체가 자연이 되는 미래를 꿈꾸었다. ‘환경’이라는 단어는 인간이라는 주체와 자연을 배경으로 두고 구분하는 개념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친환경은 환경이라는 개념이 없어질 때 실현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이 자연을 해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본인이 계속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라고 말하는 조재원 교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 세상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때,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발명으로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큼 세상을 바꾸어 낼 혁신이 또 어디에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세상을 바꾸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가 만든 세상에서 살고자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