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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PEOPLE

이보다 어여쁜 등이 있을까,
국립고궁박물관
최초 디자인 등록 출원자.
국립고궁박물관 이지혜 디자이너

글. 편집실 사진. 김오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현대인들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문화까지 탐하기 시작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출시한 조선 왕실 사각유리등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지난해 출시와 동시에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화제의 아이템, DIY 사각유리등을 디자인한 이지혜 디자이너. 그는 국립고궁박물관 최초로 디자인 등록을 출원하며 과거의 아름다움 역시 현대에도 빛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사각유리등
#문화재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전통의 미, 조선 왕실 사각등
조선 후기 비운의 왕세자 효명세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연회에 쏟은 관심은 자연스럽게 어두운 궁궐의 밤을 밝히는 야외 조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꽃무늬로 장식된 사각의 유리 안에 초를 넣어 연회를 더욱 화려하게 밝혔던 사각유리등. 그 귀한 소품은 ‘금손’을 지닌 한 디자이너의 눈에 들어와 이제는 왕실이 아닌 모든 국민이 구매하여 누릴 수 있는 ‘인싸템’이 되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죠.
이렇게 반응이 폭발적일지 몰랐어요.
판매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궁중문화축전의 이벤트로
배포를 하던 것인데,
당첨에서 떨어지신 분들이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냐고
이야기를 하신 거에요.
그래서 박물관에서 아예
판매를 하자고 결정을
하게 된거죠.”

제작을 결정한 후, 재료부터 제작 방식까지 고심을 많이하였다는 이지혜 주무관. 그는 사각유리등이 국민들에게 최대한 원래의 모습과 유사하게 다가가길 바랬다고 한다. 종이 등의 소재로 더 저렴하게 제작할 수도 있었지만, 본연의 멋을 해치고 싶지 않아 현재의 나무 소재를 채택하게 되었다고. 또한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국민들을 위해 평소 관심이 있던 DIY 형식으로 사각등을 기획하였다.

“최대한 전통의 방법을 살리고자 했어요. 전통매듭 방식으로 접착제 없이 재료를 고정하는 방법을 고안했죠. 또 안에 불을 켜는 것도 촛불의 모양을 최대한 표현하고 싶어 흔들리는 형상의 촛불 모양을 넣었어요. 하나하나 세심하게 만드느라고 고생을 조금 하였답니다.(웃음)”



디자인 등록 출원을 결정한 것 역시 전통디자인이 훼손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인기가 많아 유사품이 출현하게 될 경우, 조선왕실 유물의 원래 모양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왕실의 대표 유물인 사각 유리등이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게 되니 적절한 보호 조치가 필요했던 것.

“사실 가격도 가공대비 저렴하게 판매되는 것이라 유사품이 나와도 저희 제품을 따라가지는 못하겠죠.(웃음) 하지만 퀄리티뿐만 아니라 재료나 디자인 전반적으로 변형이 된 채로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이게 왜곡된 모양으로 알려지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특허청을 통해 디자인 등록을 출원하게 되었습니다.”



내 손에 들어온 것은 결코 대충 만들어 보내지 않습니다.
타고나길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라는 이지혜 디자이너. 제작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짧은 기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내려고 했던 것이 어려웠다”고 답했다. 급하게 제작이 결정되어 빠르게 결과물을 내어야 했는데, 어떠한 일도 대충하는 법이 없는 그였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던 것.

“공무원 조직이 사실은 행정 업무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보니 디자이너의 입지가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역량을 더 발휘했던 것 같아요. 그냥 업체에 맡겨도 되었지만, 디자이너가 직접 하는 순간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죠.”


▲고궁박물관에서 이벤트 배포용으로 제작한 천 가방. 내부는 비단으로 제작되어있으며 작은 인형은 가방마다 모두 다른 모양이다.

▲고궁박물관에서 이벤트 배포용으로 제작한 2021년 달력. 천으로 만들어져있으며 내부 장신구는 뱃지로써 탈부착이 가능하다.

▲이지혜 주무관이 기획한 모란 향수. 응모자 중 추첨을 통해 배포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작품을 박물관의 방문객들에게 전하느라 열정이다. 그는 현재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안녕, 모란’ 관련 기획품인 모란 향수의 제작도 기획하였다. 그가 기획한 이 향수는 모란이 만개했던 지난봄, 창덕궁에 핀 모란이 아침에 피워내는 향을 담아낸 것이다. 이 외에도 고궁 박물관의 전시관을 디자인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현재 박물관의 전시회를 방문객들에게 더욱 알차게 안겨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루에 1만 2천 보는 걷는 거 같아요. 하루종일 박물관을 돌아다니죠. 늦게 퇴근을 하는 날도 빈번하기도 하고, 주말출근도 합니다. 그래도 제가 만들어낸 것을 국민분들에게 소개할 생각을 하면 더욱 힘이 나요. 무겁고, 어렵게 소개될 수 있는 문화재들이 상품화가 되면서 더 친근하게 변화하는 과정이 저에게는 큰 보람입니다.”



때로는 박물관에서 새벽을 맞이하기도 한다는 이지혜 디자이너는 전통의 미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초록빛의 공원을 바라보며 해가 뜰 때는 이곳이 더욱 예쁘다고 이야기하는 그. 아마 그는 해가 지고 다시 떠오르는 새벽까지 방문객들이 걸어가는 모든 곳을 가꿔내느라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궁궐의 연회가 밤늦게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환한 빛을 품고 있던 사각 유리등. 어쩌면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 아름다움을 제 손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그의 열정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