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어요. 저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 미술 선생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시골에서 혼자 독학을 해서 서울에 있는 사범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요.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될지.(웃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태어나 짊어지는 업을 택한 기준이 ‘아름다움’이라는 것. 이는 한평생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간직하고 표현하며 살겠다는 선언이다. 카페 궤짝을 만들어낸 신종덕 대표의 삶이 그렇다. 제 힘으로 지어낸 공간 속에서, 제 마음에서 피어난 이야기를 하나씩 펼쳐놓으니 어느덧 그의 향기가 궤짝에 한 가득이다.
“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어요. 저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 미술 선생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시골에서 혼자 독학을 해서 서울에 있는 사범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요.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될지.(웃음)”
“항상 무언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시선을 받기 시작했죠.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적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대는 그렇게 보낸 거 같아요. 사람들과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요. 하지만 회피보단 직면을 선택했어요. 나 자신을 계속 발견해온 과정이었다고나 할까요.”
“카페를 어떤 모양으로 지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우리 마을이 복숭아 고장이라는 것을 떠올렸죠. 복숭아를 담는 궤짝이 집집마다 꼭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더라고요. 그래서 고향의 특산품도 알리고, 잊혀져 가는 궤짝을 살려보자 해서 컨셉을 잡아 카페를 만들게 된 거죠.”
“그 3년의 세월은, 사실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저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고향에 돌아온 것이기 때문에 이웃들이 다 저를 아는 상황이었어요. 아버지조차 사범대를 가 놓고 왜 카페를 차리느냐고 하셨죠. 이 시골에 누가 카페를 온다고 저런 걸 만드냐며 아주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시장에 가면 주민분들의 눈초리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지식을 통해 창의적인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떤 감성과 직관. 그것을 잘 바라보았다가, 용기와 모험심을 가지고 세상에 내놓을 때 나오는 것이 창의력이죠.”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길 바랬어요. 홈스쿨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곳에서 저와 놀이를 하며 사는 법을 배우는 거죠. 아들은 현재 도예 공부를 하고, 딸은 베이킹 등을 배우면서 자신을 펼쳐내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먹고살 수 있는 기술만 알고 있다면 사는 데에는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존중하며 살길 바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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